[앵커]

코로나19 때문에 도쿄올림픽에 불참한 북한이 정작 폐막 이틀 뒤부터 매일 녹화 중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의도가 궁금한데요.

네. 그래서 저희 제작진이 조선중앙 TV의 올림픽 중계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는데요.

미국이나 일본, 우리나라의 경기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비난하던 도쿄올림픽을 통해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상대로 스포츠 정치를 하는 건데요.

네. 그동안 북한은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체제 선전에 활용해 왔는데요.

오늘 은 북한의 스포츠 정치 실태를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0일,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체육 경기 소식’프로그램.

이어진 설명 화면에‘32차 올림픽 경기중에서’라는 설명자막이 쓰여 있다.

최근 폐막한 도쿄올림픽 경기를 녹화 중계한 것이다.

첫 중계는 7월 21일 열린 여자축구 조별리그, 영국과 칠레의 경기.

해설이 없어 다소 지루하지만, 별도로 자막을 입혔다.

다음 날은 중국과 브라질의 여자축구 경기를 녹화 중계했다.

그 밖에도 수영과 농구, 레슬링 등 다양한 종목의 올림픽 경기를 하루 한 시간 가량 방영하고 있다.

올해 4월, 북한은 코로나19 상황을 이유로 도쿄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3년 만의 불참.

이후 북한은 노동당 기관지와 대외매체 등을 통해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를 맹비난해 왔다.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지도가 발단이었다.

[北 대외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5월 29일 : “(지도를) 확대하거나 색도를 강조하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 간특하고 교활한 일본 반동들만이 고안해낼 수 있는 책동입니다.”]

일본이 올림픽을 개최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국제사회의 원망을 면치 못할 것이란 경고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올림픽 폐막 이틀 만에 돌연 녹화 중계에 나선 것이다.

[성문정/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 : “기본적으로 북한도 체육을 중시하기 때문에 체육과 관련해 국내외적인 정세에 대해선 지속해서 방송하는 경우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자국의 선수들이 참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상황까지 전부 취소되는 것처럼 방송을 통해서 보여준다는 건 오히려 젊은 청년들에게 더 많은 반감을 줄 수 있겠죠.”]

도쿄올림픽 녹화 중계를 살펴보면 한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특정 종목, 특정 국가의 경기만 방영되고 있다.

대부분 북한과 관계가 나쁘지 않은 영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주를 이룬다.

반면 미국과 일본, 한국의 경기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방영되지 않고 있다.

여자 배구 8강전의 경우 세르비아와 이탈리아의 경기는 녹화 중계하면서도 한국과 터키, 미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의 8강전 경기는 방영되지 않았다.

미국이 금메달을 딴 여자배구 결승전도 중계되지 않고 있다.

올림픽 중계에도 북한 당국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류희진/北 수중발레 국가대표 출신 탈북민 : “적대국이라고 가르치는데 적대국 선수들이 너무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북한 선수들 입장에선 부럽기도 하고, 저 선수들을 적대국 선수라고 안 좋게 교육하지만 나가서 메달도 따고 훌륭한 운동복을 입고 좋은 환경 속에서 하는 거 보면 신이 안 나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스포츠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드러냈다.

특히‘체육강국’구호를 내세우며 세계적인 기량을 갖춘 선수 양성에 공을 들였다.

[조선중앙TV/2012년 11월 :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성원들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장성택…”]

장성택과 최룡해 등 당시 핵심 간부들을 중심으로 국가체육지도위원회까지 신설해 국제 교류에도 적극 적으로 나섰다.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낸 선수들에겐 국가 차원의 격려와 보상도 뒤따랐다.

[北 기록영화‘체육 강국의 2015’ : “승리의 최고 화신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 영광, 영광을 드리자! (만세!)”]

2015년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북한 여자 축구선수팀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북한은 최근까지도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따기 위해 각종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참가시켜왔다.

출전 가능성이 높은 종목의 경우 북한 당국의 특별 관리를 받는다는 게 북한 국가대표 출신 탈북민의 증언이다.

[류희진/北 수중발레 국가대표 출신 탈북민 : “그 선수들은 숙소 자체도 좋은 곳에서, 운동복 자체도 같은 국가대표 선수지만 품질이 차이 나는 운동복을 입고 훈련했고. 북한 선수들 안에서도 그 선수는 특별하게 최상의 대우를 받으면서 훈련을 하게 되는 거죠.”]

북한의 집중적인 선수 육성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런던올림픽이었다.

여자 유도 52kg급 결승전에서 쿠바 선수와 맞붙은 북한의 안금애 선수.

[“엎어치기. 되치기! 되치기! (유효입니다. 되치기 유효. 안금애 금메달!)”]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안금애 선수는 북한의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북한의 메달 획득이 이어졌다.

[조선중앙TV/2012년 : “김은국 선수가 세계신기록을 수립하고 영예의 금메달을 쟁취했습니다.”]

[조선중앙TV/2012년 : “영웅 조선의 힘 불굴의 정신력을 발휘하여 림정심 선수가 또다시 우승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처음 출전한 올림픽. 북한은 금메달 4개, 동메달 2개로 종합 20위에 올랐다.

4년 후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도 북한은 9개 종목에 31명의 선수를 내보냈다.

[조선중앙TV/2016년 : “우리나라 올림픽 선수단이 남홍색 공화국기를 휘날리며 경기장에 들어서자 장외에서는 우렁찬 환호가 터져 올랐습니다.”]

당시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까지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리우를 방문하며 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런던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림정심이 경쟁자들을 압도하며 2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고,

림정심/2016년 인터뷰 : “힘든 것만큼 금메달에 가닿는 시간이 짧아진다, 이겨내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훈련했습니다.”]

뒤이어 북한의 체조영웅 리세광도 금메달 사냥에 나섰다. 자신의 이름을 딴 고난도 기술을 성공시킨 리세광.

[“리세광 선수, 금메달이 보입니다.”]

북한에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런던올림픽에는 못 미쳤지만, 특정 종목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엘리트 선수 육성의 면모를 보였다.

[성문정/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 : “아마 김정은 위원장이 주장했던 체육 강국의 열풍에 대한 그런 지시가 없었으면 지금의 북한의 스포츠가 이만큼 경쟁 도구에 올라와 있었겠느냐는 의구심을 가져봅니다. 결과론적으론 북한의 스포츠를 이만큼 높게 끌어 내는 계기가 됐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스포츠 육성 정책도 결국 김정은 위원장 찬양과 체제 선전에 활용되고 있다.

2014년 36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인천아시안게임 7위를 기록한 북한 선수들. 평양에서 대대적인 환영 행사가 열렸지만, 모든 영광은 김정은 위원장의 몫이었다.

[북한 국가대표 선수/2014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 “우리를 만나주시던 그 날처럼 한시바삐 경애하는 원수님의 품에 다시 한시바삐 안기고 싶은 심정으로 달렸습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최고지도자 찬양은 이어졌다.

[림정심/리우 올림픽 여자 역도 금메달리스트 : “내가 1등을 했다고 확정됐을 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이 우리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에게 기쁨을 드렸다는 한 가지 생각, 이젠 원수님께 막 달려가고 싶은 생각뿐이고…”]

그동안 흘린 땀과 성과에 대한 보상 역시 최고 지도자가 내린 은혜로 포장된다.

[리종호/리세광 선수 아버지 : “우리 세광이 감독 동지가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김정은 동지의 배려에 의해서 새 살림집을 수여받게 됐다고 알려주더란 말입니다. 그때 당시 저희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같은 북한 선수들의 말과 행동은 북한 당국의 철저한 통제와 교육 아래 이뤄진다고 한다.

북한 국가대표들엔 매일 몇 시간씩 특별 사상교육을 한다는 게 탈북민의 전언이다.

[류희진/北 수중발레 국가대표 출신 탈북민 : “북한 국가대표 선수들은 매일 생활총화 식으로 글을 써야 해요. 선수가 1등한 이유는 아버지 장군님을 그리며 달렸기 때문에 1등을 한 거예요. 그 선수가 대단한 컨디션을 갖고 있거나 기술이 있어서가 아니고.”]

스포츠 정치는 외교적으로 고립됐던 북한에 돌파구가 되기도 했다. 2018년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지를 드러냈던 김정은 위원장.

[김정은/北 국무위원장/2018년 신년사 :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 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 있는 해입니다. 그것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북한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김여정 부부장을 특사로 파견했고, 이후 남북 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북한이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될 경우 내년 2월 개최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활용해 새로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역시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적극적으로 설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성문정/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 : “일본에 코로나 때문에 참석 안 했던 북한이 우리 중국 북경 올림픽에 참석한다. 결국 우린 일본보다 더 안전한 코로나 환경을 갖고 있지 않느냐란 것을 통해서 세계 선수단들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부여해 줄 수도 있는 부분이고. 식량 원조라든지 경제원조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한 원조를 통해서 반드시 이뤄내지 않겠냔 생각을 해봅니다. “]

최고지도자 찬양과 체제 선전, 그리고 외교적 돌파구로 활용되어 온 북한의 스포츠.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선 또 어떤 스포츠 정치를 보여줄지 북한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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